토요일 아침에 대학 동기한테 전화가 왔어요. "니 오늘 뭐하노. 무령궁 예약해 놨는데 혼자 가기 좀 그렇다." 남자 둘이 점 보러 가는 그림이 좀 웃기긴 했는데 저도 물어볼 게 있어서 따라나섰어요.
대기실에 덩치 큰 남자 둘이 나란히 앉아 있으니 좀 멋쩍어서 둘 다 괜히 휴대폰만 봤어요 ㅋㅋ 오는 차 안에서 물어볼 순서까지 정해 놨는데 막상 이름 불리니까 머릿속이 하얘지더라고요.
동기가 주말부부 얘기를 먼저 꺼냈고 그다음이 제 차례였어요. 동기는 주말부부를 언제 끝낼지 물었는데, 누가 짐을 쌀지부터 둘이 정하라는 말을 저도 옆에서 같이 들었어요. 제 집 얘기를 꺼내니까 계산은 열심히 했는데 집사람 몫은 안 넣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가만 생각해 보니 몇 달 동안 대출 계산만 혼자 하고 집사람한테는 숫자 하나 안 보여 줬어요. 도장 찍기 전에 둘이 마주 앉아서 그 계산부터 다시 해 보라고 하셨어요.
옆에서 듣던 동기가 "니 와이프 얘기는 여태 한 번도 안 하더라" 하는데 할 말이 없더라고요 ㅋㅋㅋ
무령궁에서 나와서 간 돈까스집은 동기가 고른 곳이었어요. 대학 때 시험 끝나면 가던 경양식집이랑 똑같이 생겼다고, 메뉴판도 안 보고 둘 다 같은 걸로 시켰어요.
접시 절반을 훌쩍 덮는 돈까스에 주황빛 소스가 흥건하게 부어져 나오고, 옆에 마카로니랑 완두콩이 조금씩 올라가 있었어요. 빨간 양념 얹은 면도 한 접시 따라 나왔고요. 처음엔 둘이 말없이 썰기만 했는데, 양배추 샐러드도 반 넘게 집어 먹고 깍두기 더 달라고 하고 동기 접시에 남은 면까지 제 쪽으로 넘어오고 나서야 젓가락을 내려놨어요 ㅋㅋㅋㅋ
등 따습고 배부르니까 그제야 아까 들은 말이 머리에 들어오더라고요. 계산하고 나오는데 동기가 "니 집 사면 집들이는 돈까스로 해라" 해서 한참 웃었어요.
예약은 동기가 무령궁에 문자로 잡아 둔 거라 저는 몸만 따라갔는데, 다음엔 제 이름으로 직접 넣어 볼까 해요. 이번엔 이름 불리자마자 머릿속이 하얘졌으니 그땐 집사람 얘기부터 꺼내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