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세 시쯤이었는데 햇볕은 아직 여름이었어요. 무령궁에서 나와 버스 정류장까지 갔다가 그냥 걸어가 볼까 싶어서 지도를 켰더니 집까지 10km가 넘게 나오더라고요 ㅋㅋ
3년째라고 하니까 부모님은 뭐라고 하시냐고 물으셨는데, 그 대답을 하다가 괜히 목이 메었어요. 창피해서 물 한 잔 달라고 한 것까지 기억나요. 이번 시험은 끝까지 보고, 그사이에 다른 길 하나를 같이 알아 두라는 말을 듣고 나왔어요.
대기실 탁자에 크런키가 한 봉지 있었는데 나올 때 들고 가라고 하셔서 그대로 들고 나왔어요.
걸으면서 하나씩 까 먹었어요. 3km쯤 가니까 슬리퍼 신고 나온 게 후회되기 시작하더라고요 ㅋㅋㅋ 그래도 한 번 서면 다시 못 걸을 것 같아서 계속 갔어요.
강변 산책로에 들어서니까 운동하는 분들은 다 운동화 차림이라 제 슬리퍼만 유난히 눈에 띄었어요. 중간에 지도를 잘못 봐서 다리 하나를 건넜다가 다시 돌아오기도 했고, 편의점에 들러 물 한 병 사서 반을 한 번에 마셨어요. 해가 조금씩 기우니까 바람이 좀 선선해지더라고요.
발이 아파 오니까 딴생각할 틈이 없어서, 3년 동안 미뤄 둔 계산만 머릿속으로 했어요. 시험 날까지 몇 주가 남았는지, 그 뒤에 알아볼 일은 뭔지요.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하나씩 까 먹은 게 쌓여서 동네 어귀쯤 오니까 봉지엔 껍질만 남아 있었어요. 집에 와서 보니 발뒤꿈치에 물집도 두 개 잡혀 있었고요.
예약은 무령궁에 문자 한 통 넣으면 날짜를 잡아 주세요. 다만 걸어서 돌아오는 건 말리고 싶어요. 굳이 걸으실 거면 운동화는 꼭 신으세요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