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 제안 받고 망설이다 무령궁 다녀온 날, 혼자 먹은 선지국밥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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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아홉 시 반, 무령궁 문 앞에 서서 전날 받은 답장을 한 번 더 읽었어요. 토요일 오전에 오시면 됩니다, 딱 그 한 줄인데 들어가기 전에 괜히 다시 확인하고 싶더라고요. 몇 주째 답을 미루던 이직 제안을 오늘은 어떻게든 정리하고 나오자고 마음먹은 날이었고, 사진 속 저 국밥은 그로부터 한 시간쯤 뒤에 만나게 됩니다.
몇 주째 답을 못 내던 이직 제안
얘기는 한 달쯤 전으로 돌아가요. 대구에서 직장 다닌 지 여섯 해째인데, 예전에 같이 일하던 분이 다른 지역에 있는 회사로 옮기면서 같이 오지 않겠냐고 연락을 해왔습니다. 조건은 지금보다 나았고 하는 일도 제가 하고 싶던 쪽이었는데, 문제는 대구를 떠나야 한다는 거였어요. 부모님도 여기 계시고 친구들도 다 여기 있고, 서른 넘어서 낯선 데 가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솔직히 겁났습니다. 답을 달라는 날짜는 다가오는데 몇 주째 그냥 미루기만 했어요.
회사 선배가 흘리듯 꺼낸 이름
점심 먹다가 팀 선배한테 이 얘기를 꺼냈는데, 선배가 웃으면서 자기는 작년에 비슷한 일로 무령궁에 다녀왔다고 하더라고요. 평소에 그런 데 다닐 사람이 아닌데 말 나온 김에 진지하게 얘기해 주길래 좀 놀랐습니다. 무섭게 말하거나 뭘 하라고 시키는 데가 아니라, 상황을 한번 정리해 주는 느낌이라고요. 선배는 그때 바빠서 전화로 봤다고 했는데, 저는 회사를 옮기는 일을 목소리만 듣고 정하기엔 마음이 안 놓여서 얼굴 보고 직접 들어야겠다 싶었고 그날 저녁에 문자를 넣었어요. 이름이랑 태어난 날, 그리고 회사 옮기는 문제라고 한 줄만 적었는데 답장이 와서 주말 오전으로 잡혔습니다.
혼자 앉아 있던 그 시간
토요일 아침에 혼자 갔어요. 누구 데려갈까 하다가 이건 제 문제라 혼자 듣는 게 맞겠다 싶었거든요. 자리에 앉으니까 먼저 물어보신 게 이직 얘기가 아니라 요즘 잠은 잘 자냐는 거였는데, 그 한마디에 괜히 마음이 풀렸습니다. 그러고는 지금 회사에 오래 있을 자리는 아니고 움직일 때가 오긴 왔는데, 올해 안에 급하게 옮기는 것보다 해 넘기고 가는 쪽이 자리가 더 단단하다는 말을 들었어요. 떠나는 걸 겁내는 마음은 제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 걱정에서 오는 거라고 짚으실 땐 좀 뜨끔했고요. 듣는 중에 저도 모르게 휴대폰 메모장을 열어서 해 넘기고 가기, 겁은 내 것 아님, 이렇게 두 마디만 적어 뒀는데 나중에 보니 그날 제가 남긴 기록은 그게 전부였습니다. 옮기든 안 옮기든 몸부터 챙기라는 말도 두 번쯤 들었고요.
단골 선지국밥집으로 다시
나와서 바로 집에 가긴 아쉬워서 근처 단골 선지국밥집으로 걸어갔습니다. 야근하고 늦게 밥 먹을 때 자주 가던 곳인데, 토요일 낮에 혼자 앉아 있으니 기분이 좀 달랐어요. 여기는 주문하면 뚝배기보다 계란부침이 먼저 나와요. 접시에 올려 준 계란부침을 젓가락으로 뜯어 먹다 보면 깍두기 국물이 접시에 튀고, 그러는 사이에 밥이 이미 말아진 국이 나오는 식이라 기다리는 시간이 심심하지 않습니다. 선지 한 덩이가 가운데 가라앉아 있는 걸 숟가락으로 슬쩍 건드려 보는 게 이 집에서 제 첫 동작이에요.
부추는 종지에 따로 나오고 김이랑 간장도 같이 놓이는데, 저는 부추를 한 줌 넣고 김을 손으로 부숴서 뿌리는 편이에요. 깍두기는 큼직하게 썰어서 아삭한 편이고, 콩나물이 넉넉하게 들어 있어서 숟가락으로 뜨면 밥이랑 콩나물이 반반씩 올라옵니다. 국물이 텁텁하지 않아서 선지도 잡내가 없고, 뜨거운 걸 한 숟가락씩 넘기다 보니 아침에 긴장했던 게 조금씩 내려가더라고요.
혼자 먹으면서 아까 들은 말을 하나씩 다시 꺼내 봤어요. 해를 넘기고 가라는 말, 겁은 내 것이 아니라는 말. 그릇을 다 비울 즈음엔 답을 달라던 그분한테 뭐라고 말할지 대충 문장이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에 보낸 답장
집에 와서 그분한테 답장을 보냈어요. 썼다 지웠다 몇 번 하다가 결국 보낸 건 가고 싶은 마음은 있습니다, 다만 내년 상반기 이후로 시기를 늦출 수 있을지 여쭙고 싶어요, 이 두 문장이었고 십 분도 안 돼서 그렇게 맞춰 보자는 답이 왔습니다. 몇 주째 미루기만 하던 사람이 그날 저녁에 문장을 만들 수 있었던 건 아침에 메모장에 적어 둔 두 마디 덕이 컸어요. 저처럼 다른 지역 제안 앞에서 몇 주째 답을 못 내고 있는 분이라면, 무령궁에 문자 한 통 넣어 두고 날짜 잡히는 동안 머릿속을 미리 정리해 보는 것도 방법이에요. 그리고 나오면 뜨끈한 국밥 한 그릇, 이건 꼭 챙기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