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올라온 지 이번 겨울이면 4년이에요. 회사 따라 왔고, 올라올 때는 2년만 있다 내려갈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작년부터 아버지 무릎이 안 좋아지고, 고향 내려오라는 말이 전화 끝에 꼭 한 번씩 붙기 시작했어요.
내려갈지 말지를 혼자 정하기가 어려워서 인천 혼령사에 문자를 보냈어요. 회사 선배가 자기 어머니랑 다녀왔다고 한 데였어요. 생년월일이랑 고향 내려갈까 고민 중이라는 한 줄만 보냈는데 다음 날 시간이 잡혔어요.
내려가라는 말도, 남으라는 말도 아니었어요. 아버지 얘기는 제가 꺼내기 전에 먼저 하셨어요. 무릎이 문제가 아니라 아들이 멀리 있는 게 서운한 거라고요. 전화를 더 자주 하라고 하셨어요. 그게 내려가는 것보다 먼저라고요.
회사 얘기도 물었어요. 내년에 자리가 한 번 바뀌는데 그건 나쁜 쪽이 아니라고 하셨어요. 그러니까 내려갈 이유가 하나 줄어든 셈이에요. 사십 분쯤 있었나, 적어 간 질문은 세 개였는데 답은 다 같은 방향이었어요. 지금은 움직일 때가 아니다, 대신 멀리 있는 사람한테 더 가까이 가라.
혼령사 나오니까 점심때가 지나 있었어요. 걸어가다 보이는 갈비탕집으로 들어갔어요. 돌솥에 끓여 나오는데 팽이버섯이랑 지단이 올라가 있고, 깍두기랑 고추, 무까지 깔끔하게 나왔어요.

국물 뜨다가 소주 냉장고를 봤는데 좋은데이가 있었어요. 인천에서 4년을 살면서 처음 봤어요. 고향에서는 식당마다 있는 소주인데 여기서는 찾아도 없던 거라, 혼령사에서 고향 맛 자주 보라는 말 듣고 나온 지 삼십 분 만에 그 병을 보니까 혼자 웃음이 났어요.

한 병 시켰어요. 낮술이 되긴 했는데 갈비탕이랑 좋은데이 한 잔이면 그날은 그래도 됐어요. 사장님한테 이거 어디서 받으시냐고 물었더니 고향이 창원이라고 하셨어요. 그 한마디에 갈비 한 대를 더 뜯었어요.
아버지한테는 그날 저녁에 전화했어요. 내려가는 얘기는 안 하고 갈비탕 먹었다는 얘기만 했어요. 좋은데이 얘기를 하니까 아버지가 거기 그게 있냐고 하시면서 처음으로 길게 웃으셨어요. 내년 여름까지는 여기 있기로 했어요. 그 대신 그 갈비탕집은 한 달에 한 번은 갈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