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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그만둘까 반년 끌다 언니랑 태자신당 다녀온 날, 점심은 밀면보쌈

아침 여덟 시 조금 넘어서 언니한테 문자가 왔어요. 오늘 두 시 맞지, 끝나고 밥은 내가 아는 데로 가자, 딱 두 줄이었어요. 출근 준비를 하다 말고 그 문자를 한참 들여다봤네요. 회사를 그만두고 작은 공방을 차릴지, 아니면 다니던 대로 그냥 다닐지 반년째 혼자서만 굴리던 고민을 그날 처음으로 남 앞에 꺼내놓으러 가는 날이었거든요.

살얼음 육수에 삶은 계란 반쪽과 편육을 올린 부산식 밀면 한 그릇과 옆에 놓인 무절임, 양념장

서른다섯이고 서울에서 회사 다닌 지는 십 년이 다 돼 가요. 그날 언니가 데려간 곳이 태자신당이었어요. 언니가 몇 해 전에 한 번 다녀오고 나서 저한테 여러 번 얘기했던 곳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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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는 부산 사람인데 서울 온 지 오래됐고, 전 직장에서 만나 지금까지 붙어 다니는 사이예요. 제가 만날 때마다 회사 얘기에 한숨만 쉬는 게 반년을 넘기니까 어느 날 그러더라고요. 그렇게 혼자 끙끙댈 거면 점이라도 한 번 보자고, 자기가 같이 가 주겠다고요. 그 자리에서 언니가 제 이름이랑 태어난 날, 시간을 적어 문자를 보냈는데 처음 온 답은 그 주에는 자리가 없다는 거였어요. 되는 날을 몇 개 골라 다시 보내고, 그중에 가능한 날짜를 받고, 그렇게 문자가 서너 번 오가고서야 날이 잡혔어요. 언니는 원래 이런 데라고, 그러니까 사람들이 계속 찾는 거라고 했고요.

가서는 언니가 옆에 앉아 있어 줬어요. 자리에 앉아 공방 얘기를 꺼냈더니 손으로 뭘 만드는 일이 맞긴 한데 그걸 당장 밥벌이로 삼기엔 이르다는 말이 돌아왔어요. 지금 그만두면 준비 없이 나가는 꼴이 되니 다니면서 만들어 두다가 내년 하반기 넘어서 다시 보라고요. 그리고 저는 사람 대하는 게 서툰 편인데, 가게라는 게 물건보다 손님 얼굴을 먼저 봐야 하는 자리라는 얘기를 하셨어요. 그 말이 제일 아팠고 제일 맞는 말이기도 했어요. 무서운 얘기로 몰아가는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고, 언니 것까지 짧게 봐주고 나왔는데 한 시간도 안 걸렸더라고요.

나와서 언니가 데려간 데는 부산식 밀면이랑 보쌈을 파는 집이었어요. 서울에서 밀면 생각날 때마다 가는 데라고 하더라고요. 둘이서 밀면 하나에 보쌈 하나를 시켜서 나눠 먹었어요. 밀면은 스텐 그릇에 나오는데 육수에 살얼음이 서걱서걱 떠 있고, 그 위에 삶은 계란 반쪽이랑 잘게 찢은 편육, 오이채가 올라가고 깨가 흩뿌려져 있었어요. 옆에 붙은 칸에 무절임이랑 빨간 양념장이 따로 담겨 나와서 언니가 양념장을 풀어 넣으면서 부산에선 이렇게 먹는다고 했어요.

얇게 썬 수육을 부채꼴로 두르고 가운데 빨갛게 무친 깍둑 무를 놓은 보쌈 한 접시

보쌈은 얇게 썬 수육이 접시에 부채꼴로 둘러 담겨 나오고 가운데에 빨갛게 무친 깍둑 무가 담긴 그릇이 놓여 있었어요. 김치 대신 깍둑 무무침이 나오는 게 낯설어서 물어보니 원래 그렇게 내는 집이라고요. 클로버 무늬 휴지 한 장 뽑아 놓고 고기 위에 깍둑 무를 하나씩 얹어 먹으면서 아까 들은 말을 몇 번이나 되짚었어요. 언니는 젓가락으로 수육 두어 점을 제 앞접시에 옮겨 놓더니 나가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라 준비해서 나가라는 소리라고, 그 둘은 아예 다른 얘기라고 했어요. 밀면 국물이 시원해서 그런지 반년 동안 명치에 얹혀 있던 게 조금은 내려가는 것 같았어요.

사표를 쓸까 말까 두 갈래로만 보던 걸 준비하는 기간이라는 세 번째 칸으로 옮겨 놓은 게 저한테는 컸어요. 이번 달부터 주말에 공방 수업을 등록했고 회사는 그대로 다니기로 했어요. 혼자 오래 끌어 온 고민이라면 마음 맞는 사람 하나 데리고 가는 편이 낫겠더라고요. 옆에서 같이 들어 준 사람이 있어야 나중에 되짚을 때도 말이 덜 흔들리거든요. 예약 문자는 되는 날짜를 서너 개 한꺼번에 적어 보내는 게 요령이었어요. 저희도 처음엔 하루만 적어 보냈다가 안 된다는 답을 받았고, 후보를 여러 개 넣어 다시 보내니 그제야 답이 금방 왔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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